강혁필

<너무오랫만이라 했다. 완도의 갯내음이 전해 퍼져 웃음이 나온다 했다. 왜 여기에 있느냐고 했더니 여기가 나를 위해 해 놓은 것도 많고 편하게 대해줘서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고향 청해진으로 다시 가서 부흥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화사 정원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무겁게 보이는 장검을 허리 옆에 차고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겨지는 고향쪽을 응시하며 화려 했으면서도 소박했었던 그날 들의 생활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장고보연구회 우리 일행은 관광 한다는 생각보다는 시·공간을 넘어 1200년 전의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를 품은 채 사명감과 숙제를 안고 5월11일 0시를 기해 중국 영성시 석도진 북부 적산으로 이동하여 장보고 선양사업을 위한 중국 구출 작전이 시작 되었다.

저마다 생각과 과제가 따로 있겠지만, 나는 중국을 알고, 장보고장군을 알고 중국과 장보고와의 관계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작년 9월 사단법인 장보고연구회에서 출간하고 추강래사무국장이 엮은 완도인 해상왕 장보고 책자와 산동성 법화원에 전시되어 있는 장보고의 기록을 비교해 본다.

장보고는 789년이나 785년에 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법화원은 790?~841로 적고 있다 . 8세기 무렵 신라는 귀족사이의 정쟁 및 중앙정부의 정치적 혼란과 부역 및 세금이 가중 되었으며, 빈번한 자연재해의 발생으로 민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이로 인해 많은 신라인이 당으로 건너갔으며 이때 무예가 출중하고 용맹한 장보고는 정년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805년에 강소성 금산현 서주에서 무령군에 입대하여 절도사의 난 등 을 진압하고 815년에 무령군 소장이 된다(법화원 기록에는 819년으로 기록되어 있음).

821년을 전후하여 무령군을 전역한 장보고는 해상교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 823년 석도진 풍수 보배지에 적산법화원을 설립하여 신라방 신라촌 사람들의 정신적인 위안처가 되었다. 838년에는 일본 스님 엔닌 일행이 구법차 입당하여 2년9개월의 기간 동안 머물렀으며 입당구법 순례기를 남겼다. 법화원은 845년 도교를 숭상한 당나라 무종때 불교 탄압으로 파손 되었으나 1988년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묘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1990년(1989년?) 5월 중건 개원했다.

828년 신라에 귀국한 장보고는 신라인과 당나라 정부와 원만한 유대 관계를 유지 하면서 신라에 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당나라 산동반도의 연안에 무수히 흩어져 살던 신라인 거류민단의 생활에도 많은 기여를 하여 민생의 안정을 도모 하였으며 신라인이 노예로 매매되는 것을 없애기 위해 흥덕왕께 주청하여 청해진을 설진하여 해적을 소탕 노예문제를 해결 하였다.

장보고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이나 삼국사기에는 846년에 무주인 염장에 의해 시해 된 것으로 나와 있다.

중국과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 문화적 특징을 배경으로 유구한 세월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중국적산그룹 유한회사는 2002년부터 3억2천 위안을 투자 총5개의 전시실을 갖춘 장보고전시관을 설립하여 관광지로 조성, 많은 한국인들이 찾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보고를 기념하기 위해 장보고대사 해양 경영사 연구회가 설립되어 장보고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재)장보고 해상왕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장보고 관련 연구는 물론 본격적인 장보고 재조명 평가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1993년 장보고 잠수함 건조 진수, 1996년 부터 완도군의 장보고 축제 등 다각적인 사업이 전개 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라도 완도읍 장좌리에 법화사를 건립하여 일본과 중국이 연결하는 관광루트를 개발해서 많은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방문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완도군의 초입에 해당하는 군외면 달도마을에서 부터 장보고의 역사적 흔적과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상징물을 설치해 보여줘야 한다.

세계역사를 보면 바다를 지배했던 민족이 세계를 지배했으며 해양을 제패한 국가들이 세계를 이끌어 왔다

우리 완도인들은 세계해양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영웅 장보고의 해양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오대양 육대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 완도가 대한민국의 주인공으로 대두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역이 되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장보고와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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